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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유래

장미 역사

by 킴로즈스 2022. 12. 26.

□ 세계

세계의 장미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 고대 이집트, 고대 바빌로니아, 고대 페르시아, 고대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벽화로도 남았다. 관상용으로 재배되기는 약 3천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장미의 벽화는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발견한 것으로, 크레타 섬을 탐사할 당시 기원전 2000-1700년 사이에 건축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면서 발견하였다.

장미에 대한 첫 번째 그림은 프레스코(fresco)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5장이 꽃잎이 달린 페니키아 장미를 그대로 그리지 않고, 6장의 꽃잎에 중심부가 오렌지색은 황금빛 장미를 그렸다. 장미는 기원전 야생의 장미가 향료나 약용으로 채취하다가 차츰 실용적인 측면과 관상용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장미에 관한 형용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장미에 관한 역사 이야기는 영국의 장미전쟁이 특히 유명하다. 이 전쟁의 이름은 왕위를 다투던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가 제각기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달고 30년 동안 전쟁을 지속했다. 결국 양가가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섞은 통일 문장을 만들면서 이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것에 유래한다.

사철 피는 유럽의 장미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패권을 쥔 이후이며, 특히 화려한 대륜의 사철 피는 장미를 프랑스의 장미원에서 만들어낸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4]18세기 이전의 장미를 고대장미(old rose) ,19세기 이후의 장미를 현대 장미(modern rose)라 한다.

 

▶로마

로마인들은 장미를 재배해서 로사 겔리카(Rosa gallica)라고 이름을 붙였다. 신랑 신부들은 장미 관을 쓰기도 했으며, 로마의 귀족 여자들은 장미꽃을 찜질 약으로 사용하면 주름을 없애준다고 믿었으며, 거의 화폐로 사용하다시피 했다. 장미용액이 취기를 없애줄 것이라는 생각에 포도주를 마실 때 잔에 띄우기도 하고, 전쟁에 승리한 군대는 거리의 발코니에 모인 군중들로부터 장미꽃잎 세례를 받았으며, 또 장미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나타낸다고 생각해서 장례식에 사용되거나 묘지에 재배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시작된 천장부터 늘어뜨린 장미아래서 주고 받은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관습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는 장미향수, 장미목욕 등 생활 속에서 많은 장미를 사용하였다. 그녀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을 만날 때 본 수많은 장미잎으로 인해 자신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장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기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거처를 장미 잎으로 가득 채우곤 했었다. 특히 연인인 안토니우스가 참석하는 연회 때에는 당시 금액으로 1타랑(현재 미화로 13,000달러)를 들여 마루 바닥에 약 1m 높이의 장미를 깔았다고 전해진다. 훗날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여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장미를 뿌려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네로

네로는 축하연 때에는 장미로 목을 장식하고 장미관을 썼으며, 장미 꽃잎으로 채운 베개서 자고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네로는 마루에도 장미를 뿌려놓고 생활했으며, 분수에서는 장미향수가 뿜어 나오도록 했다. 네로의 연회에 쓰이는 술에는 장미향이 들어 있었으며, 디저트에는 장미 푸딩이 나왔다고 한다. 축하연에서는 손님들이 장미향수를 섞어놓은 풀장에서 마음놓고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네로는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15만 달러 상당의 장미를 소비했다고 한다.

 

□  동아시아

서양장미가 도입되기 전까지 ‘장미(牆蘼, 薔薇)’라는 말은 장미속의 찔레꽃(Rosa multiflora) · 해당화(Rosa rubiginosa) · 월계화(Rosa chinensis) 등을 부르는 말이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장미를 찾아보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언급되었다.

하였는데 이 때의 장미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나 장미와 모란을 비교한 것으로, 장미가 이미 들여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일부 가사를 소개한 내용 중에 <홍모란, 백모란, 정홍(丁紅)모란, 홍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옥매(御榴玉梅), 황색 장미, 자색 장미, 지지(芷芝), 동백이 사이사이 꽃 핀 광경은 어떠한가?>라는 대목이 있어서 장미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양화소록[5]에서도 가우(佳友)라 하여 화목 9품계 중에서 5등에 넣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장미는 8·15광복 후에 유럽·미국 등지로부터 우량종을 도입한 것으로 지금은 다양한 원예종을 재배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 키워드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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